→ 케렌시아의 시간 ‘예산 소리정원’ → 계단을 닮은 입면 ‘다섯 모서리 집’ → 공간을 이어주는 빛의 우물 ‘다온:당’ → 나를 위한 원형의 수공간 ‘테오리아’ → 잭슨카멜레온의 새로운 집 ‘잭슨카멜레온 쇼룸’ → 서울반세기종합전 ‘한티마을 대치동’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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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렌시아의 시간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치과를 운영하며 인생의 반 이상을 보낸 부부는 은퇴를 앞둔 시점에 치열하게 일하기보다는 삶의 여유를 갖고 새로운 노후를 맞이하기로 결심합니다. 노후 준비라고 하면 보통 어느 정도의 금액을 모아두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것보다는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지가 더 중요하겠죠. 부부는 노후 준비의 시작으로 과거 운영하던 병원 1층을 온전히 자신들만의 취미 공간으로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남편에게 필요한 공간은 좋아하는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음향 공간, 아내에게 필요한 공간은 명상과 함께 요가를 즐길 수 있는 차분한 공간이었습니다. 이에 부부가 한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방해받지 않고 취미를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은 두 영역으로 구획됐죠. 빛과 소리는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된 지점입니다. 빛은 계절과 시간에 따라 실내로 유입되는 자연광과 그로 인해 달라지는 그림자를 만드는 시각적, 경험적 요소가 되어 공간을 다양하게 느끼게 하는 장치로 기능하죠. 또한 각 공간은 소리에 의한 방해가 없도록 구성과 재료를 달리했는데요. 명상 공간은 필요에 따라 영역화될 수 있는 가변적 공간으로 구성하고 음향 공간은 시뮬레이션을 거친 396개의 자작나무 합판을 다른 깊이로 이어 붙였습니다.
각자의 성격을 닮은 공간에서 부부는 홀로됨을 즐기거나 취향의 존중이 가능한 손님들을 선택적으로 초대해 취미를 공유하며 새로운 재미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계단 형태의 입면이 돋보이는 ‘다섯 모서리 집’은 광진구에 위치한 다세대 주택입니다. 건물이 위치한 동네는 서쪽으로는 중랑천, 동쪽으로는 용마산과 아차산을 접하고 있는데요. 이 동네는 80~90년대 서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연로한 부모님이 이곳의 낡은 건물에 거주하는 것이 안타까웠던 건물주는 부모님을 위해 새로운 건물을 짓기로 했죠.
직사각형의 기다란 대지는 서쪽 능동로를 접하고 나머지 면들은 모두 다른 건물에 접해 있어 채광이나 전망이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모든 유닛에서 최소한의 조망과 채광이 가능하려면 건물을 계단 형태로 만드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죠. 그 결과 나타난 계단 형태의 입면은 5개의 모서리를 만들고, 모서리를 둘러싼 코너 창은 서로 다른 삶의 풍경을 내비칩니다. 마당이 있는 집을 바랐던 부모님을 위해 아차산이 보이는 베란다에 데크와 조경을 두고, 이를 거실과 마주하게 함으로써 바깥과 실내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덕분에 꼭대기층에서도 마당을 향유할 수 있게 됐죠. 부모님을 향한 배려와 임대수익을 동시에 실현한 비결이 궁금하다면, 다섯 모서리 집을 살펴보세요.
행복하고 즐겁고 기쁜 일이 다가온다는 염원을 담은 단독주택 '다온:당'은 정형화된 아파트가 아닌 ‘안과 밖이 재미있고 개성 있는 집’에 대한 건축주의 바람에서 비롯됐습니다. 정해진 콘셉트를 따라 저마다 특징을 갖게 된 공간들을 어떻게 통합하고 분리할지가 과제였죠. 건축가는 현관을 들어서 만나게 되는 개방된 공간을 중심으로 1층에 분리된 각 공간을 하나로 연결했습니다.
'빛의 우물'로 불리는 이 개방 공간은 건물의 주요 공간을 오가는 동선의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집의 모습을 담아내죠. 거실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2층과 다락까지 이어지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경계를 허물고 원만한 소통을 꾀했습니다. 한편 독립된 공간으로 구성된 2층은 부부와 아이들의 동선이 명확히 분리됩니다. 정해진 장면만 연출하는 아파트와 달리 다온:당은 사선 요소와 높이 변화를 통해 다양한 장면을 연출하죠. 그 미묘한 차이를 살피는 재미가 있는 집입니다.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한 한옥 스테이 '테오리아'는 주변의 전통한옥으로부터 차별화를 꾀하고자 했습니다. 모던한 장점을 강조하기 위해 ‘음(陰)의 미학’이라는 콘셉트를 도입해 블랙 컬러를 메인으로 전통의 미를 융합하여 한옥을 재해석했죠. 그 결과 천장의 블랙 요소는 하부의 화이트 요소와 어우러져 현대적 모던함을 극대화합니다.
원형의 수공간은 방문자의 마음을 가다듬는 테오리아의 핵심 공간인데요. ‘가다듬’의 콘셉트를 통해 수공간의 곡면은 마치 공예가가 공예품을 가다듬듯 스테이에 온 방문객으로 하여금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차분히 내면을 바라보게 합니다. 동시에 곡선의 요소는 치마폭을 연상케 해 한국의 미를 드러내고 있죠. 레인 체인을 통해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내면에 온전히 집중하도록 하는 치유의 공간 테오리아를 만나보세요.
가구 브랜드 잭슨카멜레온이 연희동에 새 쇼룸을 오픈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오래된 양옥을 택했다는 것.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카멜레온처럼 어디든 잘 어울리되 특별한 가구의 매력을 보여주기엔 이만한 장소도 없는 듯한데요. 친근한 모양새의 가정집 곳곳 들어선 모던한 가구들은 어딘가 편안하고도 신선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쇼룸은 크게 세 가지 잭슨 하우스, 잭슨 아뜰리에, 잭슨 플래닝(내년 오픈 예정)으로 구성됩니다. 거실, 키친, 방으로 이루어진 전시 공간을 둘러보며 인테리어 팁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카페, 소품숍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하네요. 잭슨카멜레온의 새로운 집이 궁금하다면 연희동에 들러봐도 좋겠어요.
한적한 농촌 마을이던 대치동이 '전국구 교육 1번지’가 되기까지 변천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립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매년 서울 곳곳의 어제와 오늘을 찾아가는 ‘서울반세기종합전’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열네 번째를 맞이한 올해는 대치동에 대한 이야기를 선보입니다. 전시는 학생들의 인파로 넘쳐나는 대치동 학원가의 타임랩스 영상을 상영하는 도입 부분을 시작으로 총 4부로 구성되었는데요. 경기도 한티마을이 서울시 대치동으로 탈바꿈하기까지 ‘상전벽해’의 여정을 비롯, 70~80년대 대치동 아파트 설계도면과 강북에서 이전한 휘문고등학교의 이전 모습 등을 인터뷰 내용에 기반해 현장감 있게 전달합니다.
“벌써 영화제를 하네”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 연말이 갑작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이때쯤 유행하는 ‘돌아보기 병’을 또 앓기 시작했죠. 올해는 감정의 파도가 참 많이 일렁였습니다. 희열이라는 물머리에서 시작해 좌절이라는 심해로 곤두박질치기 일쑤였죠. 밑바닥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숨이 터질 듯 헤엄쳤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겨우겨우 물 밖으로 나와 정신을 차리고 깊이를 가늠해보니 느꼈던 것보다 깊진 않더라고요. 한 번 더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때보다 유연한 대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처럼 땀기는 행복과 좌절 모두 깊이 빠지지 않는 의연한 태도를 연습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큰 행복도 큰 좌절도 없는 건가?’ 하는 생각에 가슴 한 켠이 서글프지만요. 매년 반복하는 일이지만, 힘들었던 시간을 들여보고 꿋꿋이 이겨낸 나를 발견하는 게 돌아보기 병의 묘미인 것 같습니다. 이 레터를 보고 있는 독자분들에게 너무 빨리 병을 옮긴 것은 아닌 지 걱정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