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나무 조각 ‘안문수’ → 프랑스가 공들인 극동의 파리 ‘베트남 호찌민’ → 상반된 두 얼굴의 건축 ‘동탄 야누스’ → 지속 가능한 빈티지의 힙한 감성 ‘SSAP COFFEE’ → 장안동 골목의 새 얼굴 ‘열린골목 가원집’ → 한국 근대 집에 관한 이야기 ‘모던의 시대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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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나무 조각
‘언커먼 리빙’ 특집 4번째 주인공은 공예 작가 안문수입니다. 그는 나무를 이모저모 살펴 새로운 형태와 쓰임을 부여하는 작업을 하는데요. 그저 “나무를 통해 어떠한 형상을 만드는 일”을 할 뿐이라는 작가의 말마따나 안문수의 작업물은 아주 작은 소품부터 조명, 스피커, 가구까지 무척 다양합니다. 제각기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그건 바로 공간에 놓일 때 크기와 관계없이 작지 않은 존재감을 자랑한다는 것이죠.
남다른 존재감을 갖는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 하나는 ‘보이지 않는 형태’에서 비롯된 독특한 생김새입니다. 무언가 만들고자 할 때 처음부터 구체적인 용도나 생김새를 정해두지 않고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심상을 발전시키기 때문이죠. 이에 따라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듯한 손잡이를 가진 수납함이 탄생하기도 하고, 오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타원형 소반이 만들어지기도 하죠.
또 다른 이유는 그의 모든 작업이 공간에서부터 출발한다는 데 있습니다. 손에 든 나무가 놓일 어딘가를 염두에 두고 공간 자체를 조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때문에 그의 작품은 공간과 긴밀한 관계를 이뤄 특정 장소에 놓일 때 더욱 빛을 발하곤 합니다.
이러한 작업물은 공간에서 오브제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도록 합니다. 크고 작은 나무 조각으로 일상의 공간에 다채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안문수의 작품.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어떤 도시의 인상은 단 하나의 장면으로 결정되기도 합니다.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시청과 곧게 뻗은 광장, 그리고 그 가운데 한 손을 들고 여유 있게 인사하는 호찌민 동상은 호찌민 시티를 상징하는 장면이죠. 지금은 호찌민이 된 사이공은 베트남의 변화를 가장 잘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유럽의 건축양식을 채택한 건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고, 미국 등 서구의 문물이 어우러져 새로운 도시 풍경을 보여주고 있죠. 극동의 파리라는 별칭을 가진 호찌민의 도시 건축을 만나보세요.
동탄 신리천 카페거리에는 두 얼굴을 가진 건축물이 있습니다. 앞뒤 입면이 서로 달라 야누스라는 별명이 붙여진 건물인데요. 3층 규모인 이 건물의 북쪽 얼굴은 견고한 흰색 벽으로 굳게 닫혀 있고, 커다란 유리창이 여러 개 나 있는 남쪽 얼굴은 바깥을 향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상반된 외관 탓에 하나의 건물이라 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죠.
이러한 모습을 갖게 된 이유는 바로 대지 여건에 있습니다. 건물 북쪽에는 소규모 카페와 식당 그리고 넓은 노상주차장이 있는가 하면, 남쪽에는 시원한 물길과 푸른 공원이 펼쳐지고 있는데요. 해당 건축물은 근린생활시설과 주거 공간이 결합된 상가주택이기에 결국 사생활 보호를 위한 닫힌 입면과 자연을 끌어들이는 열린 입면이 공존하게 된 것이죠. 건축가는 이를 두고 “도시의 이질적 욕망에 대응”하고자 했다고 설명합니다. 복잡한 도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한 시도가 엿보이는 ‘동탄 야누스’를 만나보세요.
‘SSAP커피’는 빈티지하면서도 ‘힙한’ 공간을 바란 건축주의 열망이 담긴 공간입니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design by 83은 건축주의 요구에 자신들만의 해석을 더해 공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죠. 단순히 시각적인 빈티지가 아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영속적이면서도 깊이감이 더해져 지속 가능했으면 하는 의도를 담았습니다.
공간 곳곳에서 이들의 의도를 살펴볼 수 있죠. 기존 건물의 구조적 요소를 일부러 남긴 채 인위적인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간결하게 형태를 만들어 물성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에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이색적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의 힙한 감성, 로컬 주민들이 가진 익숙함과 편안함이 공존하죠.
공간 외에도 내부에 놓인 가구들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목재의 접합 방식에서 영감을 받은 이 가구들은 각 제품의 표면을 달리하여 러프한 질감과 차가운 선의 느낌을 강조했죠. 목재와 철재로만 구성된 제품들은 공간과 통일감을 주어 SSAP커피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길을 따라 시원하게 열린 골목에 위치한 동대문구 장안동 ‘가원집’은 건축주가 어린 시절부터 지내온 땅에 새롭게 쌓아 올린 다세대주택입니다. 주인 세대를 포함해 총 9세대가 거주하게 될 주택의 구성을 예산에 맞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물 규모를 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했는데요. 종심형으로 좁고 긴 대지의 깊이를 최대한 활용하고, 너비 방향으로 건물을 줄인 결과 얇고 긴 형태가 특징적인 연녹색 빌라가 탄생했습니다.
옆으로 줄이고 안으로 더하는 방식이 비단 세대 구성만을 위한 전략은 아니었습니다. 양옆으로 빼곡한 빌라들 틈에 작은 여유를 주고자 한 일말의 시도였죠. 법규에 따르면 빌라와 빌라는 최소 2m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서 있게 됩니다. 이는 곧 빌라 골목의 풍경을 지배하는 숫자가 돼 버리기도 했죠. 가원집의 경우, 평면에 꼭 필요한 너비만큼 건물을 얇게 만들어 왼쪽 건물과는 4.6m, 오른쪽 건물과는 2.5m가량 떨어져 비교적 여유로운 인상을 줍니다.
가원집이라는 이름은 건축주 자녀의 돌림자를 따라 지었습니다. 옛집이 건축주의 오랜 친구였듯, 새 집도 세 아이에게 좋은 친구로 남기를 바란다고 설계자는 전합니다. 땅이 장소의 형태로 대를 잇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가원집이 던지는 또 다른 질문일 수 있겠습니다.
정원, 벽돌집, 도시 한옥 등 키워드를 중심으로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소위 ‘모던’의 시대 집의 특성들을 살피는 책이 출간됐습니다. 근대 문화유산에 관한 글을 써 온 작가 최예선의 ‘모던의 시대 우리 집’이 바로 그것인데요. 근대화와 식민지, 전쟁을 거치며 급격한 변화를 겪은 근대 한국의 주거 공간은 기이한 공존의 공간이었습니다. 서양식 응접실과 일본식 다다미 방, 장판을 깐 온돌 안방이 한 집에 있어 마치 집 속에 국경이 그어진 듯한 모습을 이루기도 했죠. 일면 한국 근대의 혼종성을 보여주는 ‘집’에 주목한 이 책은 건축사적 언어 대신 삶에 맞닿은 일상의 언어로 보다 가까이에서 모던 시대의 일상을 복원합니다. 옛것과 새것이 뒤섞인 모던 시대 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현대 사진의 거장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의 작품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어요. 용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안드레아스 거스키’ 전에서 말이죠. 거스키의 개인전으로는 국내 최초일 뿐 아니라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신작 2점을 선보인다고 합니다. 예술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순 없지만 거스키는 사진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매가를 기록한 작가이기도 한데요. 단지 카메라로 대상을 포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로 편집하는 작업 방식을 구축, 사진의 회화적 가능성을 탐구했다는 평을 받아 왔죠. 아파트, 공장 등 현대 문명을 상징하는 공간을 큰 폭으로 담아낸 그의 작업을 통해 거대한 사회 속 개인의 존재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
이번 책은 ‘나를 닮은 장소로서의 집’에 주목해 우리의 생활 공간에 크고 작은 특별함을 더하는 리빙 브랜드와 창작자를 소개합니다. 공간을 채우는 가구, 오브제, 소품과 같은 다양한 피사체를 통해 오늘의 라이프스타일을 조명합니다. 조금은 낯설고 이질적인 형태, 남다른 고집으로 일상을 흔치 않게(uncommon) 만드는 사물과 이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브리크 10호를 위해 부산으로 출장을 왔습니다. 모든 촬영을 끝낸 지금은 전포동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레터를 쓰고 있어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부산의 좋은 건축물을 직접 보고 싶었죠. 그중 인상적이었던 두 곳을 소개해드려요. 첫 번째는 기장의 푸른 바다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코랄라니'예요. 외관부터 웅장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데요. 실내에서도 바다 풍경을 막힘없이 즐길 수 있어 시각적인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두 번째는 동래에 있는 ‘수안커피컴퍼니’인데요. 유선형의 외관과 잘 가꿔진 조경이 인상적이었어요. 카페로 진입하는 동선에서 느껴지는 시퀀스는 꼭 경험해보셔야 합니다. 사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커피인데요. 사장님이 직접 내려주는 드립커피는 제가 마셔본 커피 중 최고라고 자신할 수 있어요.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공간을 발견하는 즐거움. 독자분들이 부산에서 경험한 인상적인 공간은 어디인가요?